입가에 심장이 뛰어
프랑스어에는 이런 표현이 있어.
J’ai le cœur au bord des lèvres
입가에 심장이 뛰어요
사실 이 표현은, 구토감을 느낄 때 쓰는 문장이야.
어젯밤에 정말 큰일이 일어났어.
나는 뒤늦게 사실을 접했어.
시차도 있고, 오후 수업을 들었던 강의실에서는 인터넷이 아예 터지지 않아서 어떠한 정보도 받아볼 수 없었어.
강의실을 나와 신문사들 알림을 받았을 때도, 요새 프랑스 역시 정세가 어지러워서 “la loi martiale(계엄령)”이라는 단어를 보고도 넘겼어. 근데 몇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우리나라에 대한 기사였더라고?
내가 이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는 한창 국회의원들이 소집되길 기다리고 있을 때였어. 국회에는 계엄군이 들이닥치고 있었고.
픽업할 물건이 있어 쇼핑몰에 한 친구와 들렀는데 그 친구의 쇼핑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한참을 핸드폰 화면만 바라봤어.
너무 무서웠어.
의원들이 모이기 전에 군이 들어와 의회가 해산되면 어떡하지?
이게 장기적인 소요사태로 이어진다면?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국가의 행정이 마비된다면?
그래서 내 여권의 효력이 상실되고,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는 난민의 상태가 된다면?
무수히 많은 부정적 시나리오들이 머릿속에 들이닥쳤어.
계엄령이 해지 될 때까지 언론사들이 내보내는 생중계를 보며 보냈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
작년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독재의 야욕과 민주주의의 굴욕에 분노를 느꼈는지, 그 불꽃이 사그라들기 전에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다시금 518을 수면위로 끌어올렸는데도, 국민과 언론을 탄압하고 안위에 위해를 가하다니.
이걸 쓰고 있는 지금도 손이 떨려.
외국에 있는 내 친구는 회사에서 기사를 접하고는 울었대.
약을 먹고도 진정이 되지 않아 집에 돌아가서도 또 약을 먹었대.
가족들에게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고 말했대.
나는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지만, 이곳에서 안전에 대한 민감도로 꽤나 피로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어.
오늘만해도 경찰서 앞에서 한 남성이 경찰관한테 칼을 휘둘렀다든가, 버스 바깥에서 누군가 버스 검표원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든가, 마약 카르텔 간의 총격적이 벌어진다든가, 누군가가 트램의 유리창을 깬다든가 하는 일들이 이곳에서 하루가 다르게 벌어지고 있거든.
어떤 밤을 보냈어?
지금은 좀 괜찮아?
💙
오늘의 카미노트는 사실상 휴재에 가까워.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느꼈을 두려움을 나누고 싶었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그래도 우린 항상 만약을 대비하긴 해야 할 테니까.
나는 이미 작년 새벽에 울렸던 사이렌으로 적잖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
그때를 떠올리면 온몸이 땀으로 젖을 것 같아.
멀리서나마 나의 두려움을 보내,
나보다 더욱 두려웠을 당신들에게.
오늘은 부디 평온한 하루를 보내길 바라. 어렵겠지만서도.
😎
안녕? 이건 카미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