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

예전에 어딘가에서 들었던 바로는,

집의 천장이 높을수록 아이의 학업성취도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대.

어떻게 생각해?

내가 어릴 때 우리집은 시도때도 없이 조명을 갈 곤 했어.

엄마가 내 방에 들어올 때면 방이 너무 어둡다며 자주 새 전구로 바꿔주셨거든.

방이 어두우면 눈이 나빠진다나 뭐라나…

하지만 나는 내 방이 그닥 어둡다고 느끼지도 않았던 터라 전구를 갈아야 할 이유를 크게 느끼지 못했지.

엄마도 방의 밝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셨던 걸까?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집 천장이 엄청 높아.

100년 전에 지은 집들만 보더라도 천장이 족히 4-5미터는 되기도 해.

(현대에 지은 신식 건물들은 그렇게까지 높진 않지만)

그러다보니 천장에 조명을 달아놓으면 방을 환히 비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

더군다나 조명이 우리나라에서 보편화된 LED도 아니고, 색마저 하얀색이 아니라 더욱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돼. 글자도 잘 보이지 않고.

그런데 나는 그렇게 어두운 방이 너무나 좋았어.

나는 누워있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방에 불을 켜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꼭 눈이 조명을 향하게 되니까 금세 피로해지고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거든.

그리고 어두운 방이 주는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있달까?

마침 내가 어릴 때 수면등으로 사용하던 여우 모양의 스탠드가 있는데, 그러한 편안함을 떠올리게 해주는 높은 천장과 어두운 조명이었어.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어린시절과 유럽에서의 기억을 되살리며 방을 침침하게 해놓고 지내기 시작했어. 엄마는 달갑지 않아하셨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서양인들은 주로 멜라닌 색소가 적어서 눈이 투명하고 밝은 빛을 띄고, 그래서 적은 빛으로도 사물을 식별할 수 있다는 거야!

그래서 그렇게 어둡고 잠이 오는 곳에서도 생활을 하는 데에 지장이 없었던 거지.

내 눈동자는 밝지 않고 정말 까만 편이라 아마 나는 평생 이들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저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삶에 익숙해진 사람이겠지.

(서양인들은 적은 빛으로도 볼 수 있는 대신에 여름과 겨울의 햇빛에 취약해서 선글라스를 꼭 쓰게 되는 거래. 근데 그냥 여기 햇빛이 한국보다 더 강한 것 같긴 해.)

가끔 이런 생각을 해.

차라리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고, 모든 것이 밝게 비춰지지 않는다면, 나는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있는 곳이 어디가 아래고, 위인지의 기준도 없이 그저 우주처럼 끝없이 펼쳐진 어둠이 때로는 모든 것의 시작이지 않을까?

그러니 오늘도 어두운 방은 내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으레 짐작하지 않고, 그저 무엇이든 하려고 할 수 있는 생성의 공간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 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이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이원하 - 「환기를 시킬수록 쌓이는 것들에 대하여」, 『제주에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한라봉 입술엔 쌓인 것들이 많다

 나도 그 위에 함께 쌓여 있다

 앞으로 한동안은 이렇게 쌓여 있을 것이다

 겹쳐 있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

 한동안, 이라는 기간이 좋은 것이니까

 수건은 젖었던 순간들을 기억한대

 불은 자기를 흔들었던 초의 색을 기억한대

 발전은 그 사람의 과거를 기억한대

 영원히, 말고

 잠깐 머무는 것에 대해 생각해

 전화가 오면 수화기에 대고

 좋은 사람이랑 같이 있다고 자랑해

 그 순간은 영원하지 않을 테니까

 지금 자랑해

 손금을 따라 흐르던 바람의 색이 변하면

 그때부터 비를 기다려

 기다리다가 손바닥에 비가 찾아오면

 손바닥의 온도로 미지근해질 거야

 사람들이 그러하듯 말이야

 외로움은 커질수록 두꺼워지는 것이 아니라

 얇아진다고 했어

 때려치우고 싶은 인연

 이미 친해진 사람들 중에 있지

 고르지 말고 익숙한 것들을 먼저 없애

 편하지 않고 낯선 것들을 남겨

 얇은 외로움을 유지해

 모든 것을 떠올리기 싫어해봐

 아까운 게 아니야

 없애고 없애도

 청소하다가 가끔 발견되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