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 말일까? 오늘 날짜 2024.10.11 금
그르노블 날씨 너무 맑고 화창해!
오늘의 사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목에 놓인 공원
오늘의 달 🌓 |
|
|
"심장을 강타한 느낌"
몇 달 전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두 마디를 연습하는 데에 7시간이 걸린다고 말하는 영상을 보았어.
“첫 음을 누를 때 심장을 강타하지 않으면 그건 연습이 아닌 거잖아요? 그래서 첫 음 솔 샵을 누르는데 만약 심장을 강타했다, 그러면 다음 음으로 넘어가는 거죠. 다음은 레 샵을 넘어가는데 느낌이 안 살면 계속 그걸 하는 거죠, 그냥. 그러고 그 레 샵이 심장을 강타했다면 첫 번째 음과 두 번째 음을 연결해서 연습하고, 그 연결한 그 두 음이 심장을 강타하지 않으면 다시 하는 거고, 그 두 음이 제 심장을 강타했다면 세 번째 음으로 넘어가는 거죠.”
이게 오늘 어쩌다 생각이 났을까?
|
|
|
오늘은 국가적으로도, 또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의미있는 날이었어.
바로 한국의 소설가 한강이 무려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어!
아시아권의 수상자 중 최초의 여성 수상자이기도 해!
어제 발레 수업에서 부상을 당해서 오늘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있었어. 난데 없이 프랑스 뉴스 어플에서 알림이 왔는데, 아니 글쎄, “노벨문학상이 남한의 한강에게 돌아갔다”는 문구를 보게 된 거지. 이게 믿겨져? |
|
|
그래서 나는 빨리 설거지를 해치우고, 나갈 채비를 했어.
저번에 봐두었던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팔고 있던 서점으로 달려가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었어. 성경에서 이스라엘 왕국의 다윗이라는 왕이 기쁨에 감격해 바지가 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막춤을 추었다는 구절이 있는데, 그 기분을 백번 이해할 수 있었지.
설레는 마음과 조바심으로 시내에 있는 서점에 도착했는데, 정말 단 한 권뿐이던 그 책이 이전에 봤던 자리에 없는 거야! 아무래도 내가 늦은 것 같아서 철학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어.
그리고 내가 몇 년 전 정말 탐독했던 책인 에밀 시오랑의 『태어났음의 불편함』을 발견하고 바로 페이지를 넘겼어.
“새벽 3시. 나는 이 순간을. 그리고 다음 순간을 인지한다. 나는 매 순간을 결산한다.
이 모든 것은 무엇 때문인가? - 왜냐하면 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태어났음을 문제 삼게 되는 이 특별한 유형의 잠 못 이루는 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 - 이 이후는 나에게 너무나 무서운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감당하기 힘들 만큼 무서운 의미."
"Trois heures du matin. Je perçois cette seconde, et puis cette autre, je fais le bilan de chaque minute
Pourquoi tout cela - Parce que je suis né.
C’est d’un type spécial de veilles que dérive la mise en cause de la naissance.
« Depuis que je suis au monde » - ce depuis me parait chargé d’une signification si effrayante qu’elle en devient insoutenable." |
|
|
오랜만에 이 짧은 글이 나의 심장을 강타했어.
본래의 목적은 잊은 채 바로 이 책을 집어 들고 계산을 하러 갔어.
한강의 책이 더 있는지 물었고, 없다는 대답을 들었어.
하지만 나는 두 시간 정도 들떠있는 상태였거든, 그래서 오늘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국 소설가인데, 내가 한국인이라서 너무 자랑스럽고 행복하다는 말까지 덧붙였지. 그리고 책은 나중에 더 입고 시켜주신다길래 다른 책들도 많이 들여와달라고 부탁했어. |
|
|
오후부터 온종일 심장이 뛰고 있어.
심장은 항상 뛰고 있지만, ‘두근거림’이라는 단어는 심장이 이미 움직이고 있는데도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 같아.
한강의 책들이 그래.
오늘은 단편집인 『노랑무늬 영원』을 저녁부터 읽었어.(물론 한국어로!)
읽다가 카미노트를 놓칠 뻔 했는데, 꼭 다 읽고서 쓰고 싶었어. |
|
|
소설가들은 당장 장편을 쓰기보다는 단편을 먼저 쓰고, 그 다음 장편으로 넘어가고는 해. 그래서 단편들은 작가의 초기작에 해당하고 짧은 글들에 단편적인 삽화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압축적이고, 나의 사견에 불과하지만 작가의 관점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해.
내가 계속해서 한강의 작품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한강이 보여주는 ‘삶’이 너무나 눈이 부시기 때문이야.
사실 그 삶들은 하나도 아름답지 않아. 인물들은 가까운 이를 잃었거나, 죽음의 문턱에 가본 적이 있거나, 폭력을 당했거나, 자신도 모르게 저지를 뻔한 폭력을 피하려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등 사건 이후 엄청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어.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못한 상태, 그것이 트라우마야. 과거에만 머무르고 나아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자신의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조차 몰라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고, 방향조차 알지 못해. 그래서 인물들은 생명력이 없는 모습으로 그려져.
하지만 결국 이들은 그 먼길을 돌고 돌아 자신의 생명력을 발견하고, 빛의 따스함을 느껴. 그리고 인물들의 생각이 전환되는 장소인 꿈은 트라우마의 공간에서 새로운 살이 돋아나는 치유의 기억을 간직하는 공간으로 변모하지. |
|
|
『노랑무늬 영원』을 읽다가 눈물이 날 것 같았어.
『소년의 온다』의 마지막에서 5월 광주에서 중학생 아들을 잃은 엄마가 평생 아들을 마음에 묻고 사무치며 살아가다가 따스하게, 덜 굳은 아스팔트를 밟으며 온기를 느끼는 장면이 나와.
그때 느껴졌어.
이 한강이라는 작가는 수십 년간, 단 하나를, 삶을 말하고 있구나.
심장이 울렸어. |
|
|
항상 삶을 찬미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
그렇지 않다면 에밀 시오랑의 글들을 좋아할리 없겠지.
하지만 한강의 작품에서 인물들은 자신을 무기력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것에서 삶을 찾게 돼. 그러한 느낌을 인지한다는 것 자체가 살아있음을 의미하니까.
마치 죽음충동에 시달리는 사람이 사실은 너무나도 삶을 사랑하고 있고,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실 자신을 절대적으로 믿어줄 이상적인 사람을 바라고 있는 것처럼. |
|
|
한강의 글들을 읽다보면 나는 그저 텍스트를 읽는 독자에 불과한데도 마음이 아프고 그 고통을 외면하고 싶어져. 그래서 한강을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많고.
하지만 나는 그 고통을 마주보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삶과 성찰을 되풀이하며, 이따금 그 과정이 괴로울지라도, 어느 정도 안정에 이를 수 있던 것 같아.
내가 한강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많지만 개인적인 이유는 이 정도!
벌써 금요일이네!
, 남은 주말 잘 보내!
짧은 계절을 잘 누리자🍂
😎
✨카미노트에 남기기✨
⬇ |
|
|
한강 - 「노랑무늬 영원」, 『노랑무늬 영원』
만나고 싶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의 그가 아니라, 그때의 그를. 아니, 실은 그때의 나를. 그 여자를. 고집 세고, 무엇에도 물들지 않은, 그래서 성숙하지 않은 그 여자를. 그러다가, 뜻밖에도 불에 덴 듯 깨닫는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자신을. 그, 아무것도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나는 시큰거리는 손가락들을 내 따뜻한 목덜미에 문지른다. 그때 안다. 만일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랑을 가진 인간으로서 다시 살아나가야 한다면, 내 안의 죽은 부분을 되살려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부분은 영원히 죽었으므로.
그것을 송두리째 새로 태어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 형언할 수 없는 막막함으로, 지금의 그를 만나고 싶어진다. 아마 결혼을 했겠고 아이들이 있을, 삼십대 후반에 접어들었을, 십 년의 시간 동안 풍화되고 얼마간 일그러졌을 그 사람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