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내 어리석음 역시 함께 부서졌다고” 오늘 날짜 2024.09.18 수
그르노블 날씨 결국 히트텍을 꺼냈어
오늘의 도시락 을 놓고 가서 치킨 파니니!
오늘의 달 🌕 이곳도 밝은 보름달이 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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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리석음이 사랑을 파괴했을 때, 그렇게 내 어리석음 역시 함께 부서졌다고 말하면 당신은 궤변이라고 말하겠습니까."
3년 전, 1월 1일에 쓴 일기를 꺼내봤어.
“세상은 환幻이고,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입니다.”라고 써 있더라고.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묻는다면 주저 없이 ‘한강’이라고 말하겠지.
나의 새해를 같이 맞이하는 작품은 대부분 한강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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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환이다’라는 말은 한자를 보지 않았을 때엔, 하나의 ‘원’이라는 말이라고 생각했어. ‘환원하다’ 같은 말 있잖아.
세상은 서로 맞물려 둥그렇게 굴러가는 유기체이며,
나의 출현 혹은 탄생 또한 세상사의 일부,
자연의 섭리이고 그에 따라 나의 종결도 마찬가지겠지.
‘나’로서 존재한다기보다 세상의 큰 흐름에 스러지고 소비되는 작은 것이라는 느낌에 화가 나지 않았던 것 같아.
나를 겪어본 사람들은 내가 자기주장과 색깔이 뚜렷한 친구라고 말하겠지만, 그만큼 무색무취의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나의 바람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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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내가 이 거대한 흐름의 일부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어.
또, 세상과 나의 필연적인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타인과 세계는 어떤 약속을 맺고 있는지, 나아가 타인, 세계와 정해놓은 규칙과 섭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노라면,
나의 소속감은 안정적으로 변하고, 남들과 다르고 싶지만 그럼에도 인정받고 싶던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세계의 존재들을 탐구하는 것을 갈구하게 되었어.
그 마음으로 문학을 공부하고, 깨달으며 살아가고, 배워가고, 보면서 듣고, 생동한다는 것이,
모든 삶의 순간이 기적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며,
환의 고리에서 흐르는 필연을 타고 살아가다가,
그 물결을 몸에 아로새기고 싶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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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환’은 당연히 ‘아픔’, ‘환부’겠거니, 그도 아니라면 ‘환희’라고 생각했어.
알고보니 저 한자는 ‘환상’을 쓸 때 사용되는 글자더라고.
세상이 환상이라는 것은, 허구라는 것을 의미할까?
아니, 오히려 모든 것이 가능한 공간이라고 나는 보았어.
산다는 것이 꿈을 꾸는 것이라니.
믿기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니,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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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가 원하지 않던 일들에 휘말리면서 이것을 꿈이라 여기고, 깨어날 때엔 주체성을 회복하는 공간이라는 것이 다시금 나를 강하게 만들었어.
내가 꿈이라고 자각한 순간, 그 장소를 지배하고, 나에게 최적의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어디에 있든 내가 될 수 있다고.
환의 장소에 어느샌지도 모르게 들어선, 이 흐름에 놓인 우리에게 꿈이라는 건, 시작과 끝이 없이 반복되면서도, 역설적으로 필연적이게도 소외된 모두가 사실은 서로로 공존하고 있던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을 때,
모든 하루와 순간이 환상이 되었고,
나는 문학하는 의미를 살짝 맛본 것 같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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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낸 레터의 제목은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에 나온 문장에서 가져왔어. ‘세상은 환’이라는 말도 역시 그 작품에 나와.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따금 도원경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아.
사람이라는 자연과, 그로 인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사실은 하나도 없는 이곳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 경이를 느끼고 있어.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강해지고 싶어.
강해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적어놓고 보니 궁금해지네?
에게는 ‘강해진다’는게 어떤 뜻이야? 어떻게 해야 강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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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 희랍어 시간
"나는 당신에게 왜 그토록 어리석은 연인이었을까요. 당신에 대한 사랑은 어리석지 않았으나 내가 어리석었으므로, 그 어리석음이 사랑까지 어리석은 것으로 만든 걸까요. 나는 그만큼 어리석지는 않았지만, 사랑의 어리석은 속성이 내 어리석음을 일깨워 마침내 모든 것을 부숴버린 걸까요.
τὴν ἀμαθίαν καταλυέται ή ἀληθεία.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한다는 중간태의 희랍어 문장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할 때, 진실 역시 어리석음에게서 영향을 받아 변화할까요. 마찬가지로 어리석음이 진실을 파괴할 때, 어리석음에도 균열이 생겨 함께 부서질까요. 내 어리석음이 사랑을 파괴했을 때, 그렇게 내 어리석음 역시 함께 부서졌다고 말하면 당신은 궤변이라고 말하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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