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고 있어 오늘 날짜 2025.5.10. 토
오늘의 날씨 바람이 불어.
창문을 미처 덜 닫았던 틈으로 세차게 숨을 불어넣고 있었어.
그래서 소리를 내고 있었어.
알려주고 있던 걸까, 바람이 불고 있다는 걸?
무언가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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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지난 주 금요일에 발송하려던 일기들이 있었어.
바쁜 일들이 겹쳐서 보내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 덕에 여러 기록들을 함께 읽을 수 있어서 나를 돌아보기에 좋았던 것 같아.
드디어 작년 9월부터 촘촘했던 기록하기가 끝을 맞게 되었어.
반년이 넘게 우리는 각자의 메일함에서 만났어.
그리고 나에게도 역시나 이 친밀하고 내밀한 글쓰기가 주었던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어.
미리 감사인사를 앞쪽에 남길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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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의 기록
폭력으로서의 언어와 그럼에도 타인을 위하여 자신을 피흘리게 하는 세계로 다시 걸어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나’의 자기폐쇄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을 초과하기 위한 아픈 몸부림을 통하여, 문학이 보여줄 수 있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진실에 가닿는 법을 나누었습니다.
서로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발굴하고 그것들을 함께 어루만졌습니다. 울림소리들이 공통적으로 나오면서 대중에게 선호되는 인상주의와 그 빛과 색채의 따사로움이 떠올랐습니다. 한자가 주는 기표와 기의를, 그 상상력이 논의되었습니다.
죽은 언어와 완전무결하고 영원불변한, 아름답고도 고결한 세계에 매달릴 수밖에 없던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서로를 위하여 피눈물을 흘리는 세계로 두둥실 떠올랐습니다.
이 상승의 움직임을 기억합니다. 또 언젠가 다시 우리에게 하강과 침묵, ‘그것’이 찾아올지라도 우리는 다시 올라갈 방법으로서의, 나를 넘어서게 할 방식으로서의 ‘타인’을 만나길 기대합니다.
곤잘레스-토레스와 김사월의 아름다움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찰나에 불과해 연약할 것 같은 계절에
정제된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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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의 기록
이 레터는 언제쯤 정말로 끝이나게 될까?
친구가 어제 연락이 왔어.
80세가 넘은 할아버지가 특정한 직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회사에 갑자기 출근을 하시기 시작했대. 왕년엔 큰 회사에서 요직에 계셨고, 가족이 정계에서 활약을 하고 있대.
한마디로 부와 명예를 모두 가졌고, 이젠 자유로운 시간마저 얻은 거지.
그런데 그분은 단지 '일할 곳'이 아니라 '출근할 곳'이 필요하셨나봐.
그래서 친구는 내게 물었어.
"나라야 너는 늙는 게 슬프다고 생각하니, 어떤 것 같아?"
나는, '늙는 것보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점차 없어지는 게 슬픈 것 같다'고 했고.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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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의 기록
나는 요새 새로운 걸 배우고 있어.
한계를 넘어서고 싶어졌어.
건반을 더욱 다채롭게 치는 연습을 하고 있고, 유투브로 드럼을 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어. 드럼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던 건 아니고, 내가 할 줄 아는 것들을 제대로 해 보고 싶어졌어.
듀오링고에서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했어. 한강의 『희랍어 시간』 이라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책 내용 중에 그리스어 알파벳이 종종 나와. 그럼에도 한번도 그 문자를 소리내어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어. 스스로도 이상하게 여기게 되어서 문득 그리스어에 도전하게 되었어. 어떤 목표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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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린 사촌동생과 가깝게 지내고 있어. 드럼과 베이스를 칠 줄 아는데 건반을 배우면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물어봤어. 이미 두 차례 시도를 해봤대. 하지만 실패했고, 그 결과 자신은 가장 쉬운 악기가 드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어. 드럼은 연습하는 만큼 실력이 느는 게 보이는데 건반은 그렇지 않더래.
하지만 피아노를 오래 쳐 왔고 다른 악기들도 약간씩은 다루는 나는, 악기들의 문턱과 전문가 수준까지 이르는 노력의 스펙트럼을 알기에 그 말은 어떤 부분에선 맞고, 어떤 부분에선 틀리다고 답했어.
그러다 문득 악기는 언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나는 다시 나의 건반을, 내가 만족할 때까지 연습하던 열여섯 살 때처럼, 갈고 닦아야지, 생각했어. 더불어 이 마음을 다른 곳에도 쓰고 싶어졌어. 나는 끝을 보는 성격이고, 남들보다 그 끝이 빨리 이르곤 하니까.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 나가고 싶어졌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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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의 기록
새로운 제안을 들은 오늘, 그리고 새 마음이 찾아 온 오늘, 꼭 레터를 보내고 싶었어.
푸른 봄을 건강하게 걷자. 안녕.
조만간 우리에게 끝이 찾아올 것 같아.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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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의 기록
너무 쉽게 권태를 느낀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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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의 기록
꿈에서 말티즈를 키우는 집에 놀러갔어.
실제로는 고양이를 기르는 집이고 꿈에서는 고양이와 강아지 둘 다 있더라고.
말티즈의 이름이 '쑤대'였어.
고양이의 이름은 원래 '뽀뽀'라는 걸 알아서 단번에 그렇게 불렀지만, '쑤대'는 초면이었어.
요새 고양이나 개를 기르고 싶어졌어.
자각하지 못했는데, 내가 생각보다 동물들(포유류 한정)을 좋아한다더라고?
그 온기와 온몸을 다한, 언어를 초월한 사랑을 좋아해.
작은 몸짓이 전하는 언어의 결을 깊게 느껴.
'쑤대'를 까먹지 않으려고 눈을 뜨자마자 메모 앱을 켜서 적어두었어.
언젠가 만날 수 있을까, 나의 쑤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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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의 기록
언젠가,
내 다리가 이대로 바스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
이 고통은 어떠한 사건에 의한 것이 아니라서
있다는 사실조차 까먹고는
하루 중 가장 편안해질 시간에 와서 나를 좀먹어
하루종일 익숙한 고통이 전체의 시간을 반듯이 채우고 있는 것과,
방심한 틈을 타 나를 휴식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것 중 어떤 것이 더욱 끔찍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고통이 있고,
사람의 수 만큼 각기 다른 종류의 아픔이, 스스로를 안식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들이 있을 텐데,
나의 아픔이 가장 괴로운 것이라고 타인에게는 말할 수 없을 거야. 그들에게도 자신의 것이 그러할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무엇을 위해 몇 개월에 걸쳐 써내고, 당신에게 말을 걸고, 이 아픔마저 나누려고 하는 걸까?
나에 대한 걱정을 가볍게 여겨주길 바라.
그것이 당신의 삶을 차지할 만큼 나를 마음에 깊게 자리하지 않길 바라.
그게 나를 언젠가 배신할 마음이란 걸 알기에? 천만에.
그게 나의 사랑이니까.
나는 나로서 살고 싶지만, 동시에 무아로서 살고 싶어.
나의 문학과 예술이 모두 그 점으로 모여들길 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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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의 기록
몇 명의 구독자들이 도대체 카미노트를 언제 보낼 거냐고 장난으로 나무랄 때가 있어.
그 마음을 기억하고 싶어. 이따금 이럴 때면 나무가 되고 싶어. 모든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
왜 싫은 것들은 사건을 기억하고, 좋아했던 마음들은 쉽게 잊히는 걸까?
손가락에 습진이 생겨서 피부막이 벗겨지고 있어.
엄마가 어렸을 때에도 같은 증상이 있다가 어느 날 없어졌대.
그걸 왜 잊고 살았는지 모르겠대.
있지, 내가 공부했던 작가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한강은 모두 타인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는 인물들을 만들어냈어.
나는 항상 '나'로 살고 싶었는데, 사실 내가 경험한 바깥세계가 내 안에서 필터링을 통해 내가 된 것이니까, 내가 말하는 언어와 이 문화는 모두 과거에서부터 온 것이니까, 결국 나만의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나는 존재할 수 없고, 아주 특이한 나만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거야. 그럼에도 우리는 개인으로서 유일하고.
그러니까, 나의 탄생과 성장이 외부로부터 왔으니까, 이젠 그것들을 돌려줄 때가 된 것이지.
타인을 지키고, 타인을 사랑하고.
물론 아직 나는 타자를 사랑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
모르는 사람으로서의 타인은 동정하되, 내가 이질감을 느끼는 타자는 배척하게 돼.
지난한 용서와 이해에 가닿으려는 빙빙돌아 세우는 은유들과 지름길과 같은 섬광으로 다가오는 문학들, 혹은 예술 전반.
마지막으로 실비 제르맹의 "소금 조각"을 읽었어.
우리는 아마 의미를 위한 방황과 방랑을 계속할 거야.
누군가는 내게 '답'을 묻지만, 질문은 완성되지 않기에 그 빛을 잃지 않게 되는 것 같아.
계속해서 의심과 잠재로만 글을 쓰게 되네. 말 역시도.
앞으로도 질문을 품고 살아갈게. 아주 어렵더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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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제르맹 - "소금 조각"
"정확히 묘사하긴 어려워. 별거 아닌 듯해 보이면서 전부인 것. 불확정의 무한한 전부. 난 내 안에서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그 오래된 소음을 잠잠케 하려고 노력 중이야. 침묵을 가로지르는 미세한 울림들을 청각이 놓치지 않도록 말이야. 아마도 그거겠지, 장차 완성해야 하는 건. 별거 아닌 사소한 것들에 대한 경외심. 지평선에서 아주 은밀히 솟구치는 한숨 소리들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방 사방 벽 안에서 끝없이 방랑하기. 예기치 못한 그곳에,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기. 자신 안에서 흐르는 시간이 살랑대며 떨리는 것을, 우리의 핏속에서 생명이 은밀히 작업 중임을 느끼기. 세상과 타인들에 대한 관점을, 아무 일 없다는 듯 철두철미 갱신하기."
카티아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잔을 내려놓았고,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부연했다. "교활하게도 무수한 화산을 품고 있는 열정의 도가니 속으로 다시 휘말려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더 이상 없어. 정말이야. 다른 식으로 사랑할 줄 알게 되었으니까. 초연한 사랑이지. 나는 두 손이 자유롭기를, 무엇보다 비어 있기를 바라거든. 언제나 더 비어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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