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믿을 수 있겠어? 오늘 날짜 2025.2.22. 토
오늘의 날씨 폭우가 내렸어,
총 세 번의 휴식을 가졌는데, 두 번째 휴식에서 점심을 먹었거든?
그때가 되어서야 모두 판초를 벗을 수 있었어.
비와 해를 함께 본 날이야.
오늘의 달 🌘
오늘 걸은 거리 41,3km
오늘 걸음 수 55,409걸음
Arzúa ➡️ Santiago de Compostela
남은 거리 0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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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29.믿음의 순례자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깊게 믿는 사람이 있어?
혹은, 믿음에 배신당한 적이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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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드디어 마지막 날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8명이 아닌, 6명이 오늘 산티아고에 도착할 예정이야.
친구1과 친구3은 오늘의 거리가 너무 길다며 이틀에 걸쳐 나눠서 오겠대.
다른 숙소에 묵었던 핀란드 순례자를 제외하고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은,
여섯시에 출발할 계획을 세웠어.
40km를 간다고 치면, 중간에 커피를 마시고, 점심을 먹고, 또 시간이 지체된다면 다시 쉬어야 하니까 10km마다 총 세 번의 휴식을 취하기로 했어.
10km를 걷는 데엔 두 시간이 소요되니, 휴식시간까지 포함해 9시간 정도를 잡았어.
도착은, 오후 3시가 될 수 있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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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까지 계획대로 되지 않았어!
여섯시에 준비가 된 건 나와 친구2뿐이었고, 여러 명을 기다리다가 결국 숙소에서 7시에 이용할 수 있는 카페에서 커피까지 마시고 출발하게 되었거든.
친구1과 친구3은 산티아고에서 10km가 떨어진 마을에서 멈춘대.
우리처럼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던 둘은 여유롭게 기상했지만, 결국 우리의 출발이 늦어져 그들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할 기회를 얻었어.
이 친구들이 다음날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엔, 각자 다른 일정들로 산티아고를 바로 떠나고 없을 거라 정말 마지막이 될 인사였지.
그리고 빗속으로,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깜깜한 어둠속으로 우리는 발걸음을 옮겼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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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어?
나는 친구1에게 종종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할 때가 있어.
나에게 있어 '믿음'은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가 일어날 것'이라는 게 아니었어.
나는 사람의 다정함을 믿고 싶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친구에게 얘기했던 거야. 누군가에게 기회를 줬으면 해서.
나도 그러한 믿음을 받은 적이 있으니.
또 다른 믿음은, '신뢰'겠지.
나는 마지막 밤을 보낸 아르수아에서 친구1을 설득하려 했어.
장난스레 한 것이지만, 내용은 진심이었어.
"2시간만 더 가면 돼. 그런데 왜 멈추겠다는 거야? 내 발은 더이상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야. 그러니까 나는 빨리 끝내고 싶어. 거리가 먼 것보다, 빠르게 걷는 것보다는 하루라도 더 걷는 일이 내겐 좋지 않아."
친구1은 이렇게 말했어.
"그렇게 아프다면서, 왜 자꾸 무리를 하려고 하는 거야? 나는 천천히 걸어서 근육통도 없어. 빨리 걸으면 발목이 아파. 나는 너네 속도에 맞춰서 쫓아갈 수가 없어. 그렇게 오래 걷고 싶지도 않아. 그러니까 나는 이틀에 나눠서 갈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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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두려워졌어.
내가 만약 40km를 가지 못한다면 어쩌지?
마지막으로 그 정도 거리를 갔던 기억을 떠올렸어.
무척이나 지루하고, 그 길들을 지나고 나서 신체적인 고통과 더불어 정신적으로도 힘들어하던 순례자들이 생각났어.
무서워졌다고, 걱정이 생겨났다고 친구에게 말하자,
"다들 네가 그만큼 가겠다고 하니까 같이 간다고 하는 거야. 네가 30km 지점에서 멈추자고 했어봐. 다들 네 의사를 따랐을 걸? 아프다고 하면서도 너를 믿으니까 그렇게 간다는 거야."
신기하지.
사람을 불신하던 나의 친구가 이런 말을 꺼낸 것이.
나는 그 말에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어.
사실 더 잘 일이 없으니 침낭도 이미 버렸거든.
나를 믿고 따라와주는, 혹은 함께 걸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믿음과 신뢰를 저버릴 수 없었어.
그래서 나는 더욱 힘차게 걸었어.
이건 부담이 아니라 응원과 용기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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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기 위해 두 번째 휴식을 가졌어. 출발한지 세 시간 반이 지났을 무렵이었어.
언제 비가 그렇게 내렸냐는듯, 하늘은 맑아졌고 해가 눈이 부시게 빛났어.
첫날부터 함께 한 벨기에 순례자에게 말했어.
"첫날에 같이 있던 여덟 명 중에 이제 우리 셋만 남았네요."
바로 다음날 헤어질 테니 떠나기 전에 식당에 있던 큰 거울을 통해 다섯 명의 거울셀카를 남겼어. 뒤이어 올 다른 순례자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룹채팅방에 공유했고.
휴식이라기엔 다소 긴 식사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우비를 벗고 더욱 열심히 진흙이 되어버린 산길을 걸었어.
그렇게 20km 지점을 지나, 10km지점에 도달했을 무렵, 우리는 마지막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한 식당에 들어갔어.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지난 한 달 여간의 일 중 가장 기쁘고, 벅차오르는 순간을 맞았어.
'너네 숙소 우리 가도 돼?'
친구1에게서 온 연락이었지.
너무나 아쉬웠대, 이렇게 작별이라는게.
그래서 여지껏 걸었던 것 중에 가장 빠른 속도로, 쉬지도 못하고, 샌드위치는 솔드아웃이라 먹지도 못하면서 걸어오고 있대.
그렇게 우리 여덟 명은 산티아고에 먼저 핀란드 순례자가, 그리고 우리 다섯 명이, 그리고 뒤를 이어 저 두 명의 친구들이 도착했고, 함께 '나라'라는 아시아 음식점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회포를 풀었어.
내가 지녔던 어떤 믿음보다도, 값진 것을 만난 날이었어.
이렇게 예상치 못하는 기쁨들이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데, 그것도 사람에 의해서.
내가 어떻게 나에게 못되게 구는 사람에게도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겠어?
그 사람 역시 내 삶에 행복을 안겨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니, 나는 이번에 신뢰를, 믿음을, 다정을, 마음을, 친구를, 우정을 발견했어.
어쩌면, 이건 랭보가 말했듯, 재발명일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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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고마워!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순간에도 경험은 우리를 바꿔놓는구나. 내 무지를 채워줘서 또 고마워. 이 노트를 읽는 것 또한 누군가에게 경험이 되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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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la!
마지막 날의 기록을 보내.
성실하지 못한 탓에 1월에 시작한 노트를 3월까지 읽게 되었네?
그 동안 당신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어?
내가 아무 목적도 없이, 한달을 걷고,
그 기록들을 한달 반에 걸쳐 보내는 동안?
이건 취조가 아니야.
나는 다정하고 싶거든.
나는 말투가 다정하지 못해.
아마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인 것 같아.
이 때문에 오해도 자주 사고, 때로는 내 의도가 좋은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말투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기도 해.
아이러니하지, 나를 상처입히는 모국어로부터 도망쳐서 외국어를 배우기를 희망하면서도, 결국 나 역시도 남을 아프게 한다는 게.
이 노트 역시도 누군가에겐 아픔으로 다가가진 않았을까, 마지막 날이 되니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하네.
순례길을 완주한 소감 같은 건, 이미 세 번째니까 감흥이 없다기보단, 나는 7년 전 첫 순례길에서도 큰 감동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할게.
그보다는 함께 이 시간을 보낸 사람들을 알게 된 기쁨이 훨씬 값지니까.
우리는 꼭 순례길이 아니어도, 인생에서 함께 걸을 사람들을 종종 새롭게 만나게 되겠지.
누군가는 우리와 같은 속도로, 누군가는 뒤에, 그리고 앞에, 저마다 다른 거리를 가다가 하루쯤 만나게 되는 날도 있을 거고.
때로는 비가 내려서 몸이 젖고, 추위에 떠는 날도,
더위에 허덕이며 갈증으로 머리가 아찔해지는 날도 있을 거야.
우리, 그럴 때에 종종 다시 만나자.
안녕!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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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a Simone - Wild Is The Wind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까, 나는 엘라 피츠제럴드가 부르는 Misty를 틀었어.
이 노래는 벨기에 순례자가 뒤이어 신청한 곡이야.
우리는 이따금 함께 걸을 때 오래된 프랑스 샹송을 듣곤 했거든.
아침에 받아볼테지만, 이 노래는 늦은 밤에 들으면 좋을 것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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