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카미노트! 오늘 날짜 2024.12.31. 화
오늘의 사진 스페인의 한 미술관에서 찍은 아이의 사진이야.
폭격 속에서 살아남은 아이의 사진이래.
아이의 이름은 '하늘'을 의미한다고 했어.
오늘의 날씨 7도에도 이상하게 손에 있는 피와 수분이 모두 얼어가는 느낌이라 장갑이 필수야!
오늘의 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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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결산
안녕!
올해의 마지막 레터를 보내.
처음에는 오늘 내가 들었던 ‘단호하고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어.
종종 나를 어려워하는 한국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단호하지만 무섭지는 않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거든.
하지만 이렇게 일년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해도 좋을 것 같아서!
몇 가지 질문들을 생각하고 답을 해 보았어.
저번에 보냈던 ‘프루스트의 질문들’ 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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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어났던 일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 글쎄, 올해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12월에는 특히나 계엄령부터 항공기 사고까지. 또 몇 달 전에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있었고. 보통 초기에 있던 일들은 잊기 마련이지. 개인적으로는 6월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일이 가장 큰 사건이 아닐까 싶어.
- 프랑스에 온 건 이젠 사건이라기보단 그냥 일상이 되어버렸거든. 2월에는 졸업을 했는데, 이건 정말 먼 과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크게 의미가 있었나, 다른 일들에 묻혀 크게 두드러진다고 느껴지진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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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있던 일 중 가장 곤란했던 일은?
- 스트레스의 강도와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간은 다른 것 같아. 가장 나를 잠 못들게 했던 사건과 가장 길게 나를 괴롭혔던 사건은 달라서. 전자는 사람과 관련된 거고, 후자는 프랑스에 와서 한 달 넘게 두드러기에 시달렸던 거?
- 사실 나는 건강에 대해 큰 컴플렉스가 있었어. 건강이 일상에서 발목을 잡고, 아무리 건강관리를 위해 애를 써도 더 나빠지지 않게만 관리하는 거지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계속해서 노력해도 의미가 없는 것 같았어. 젊은 나이에도 이런다면 나중엔 얼마나 더 안좋아질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 그래서 이번에 그르노블에 도착했을 때에도 쉬는 걸 가장 우선적으로 했는데, 그럼에도 한 달 반 정도를 시달렸더니 정신적으로도 많이 약해졌던 것 같아.
- 그래도 마침 학교가 열흘 정도 방학을 가져서 잘 회복했어! 일상과 쉼의 균형은 확실히 중요한 것 같아. 그것만 해결돼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인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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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갔던 곳 중 가장 좋은 곳은?
- 망설임 없이 제주도와 후지산! 올해 5월 어린이날 휴무에 친구들과 후지산을 위해 제주도에 다녀왔어.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산을 다 오를 때의 정복감이랄까, 셋이서 함께 출발은 했지만 결국 자신의 속도에 맞춰 따로 가면서 혼자 걷게 되었는데 그때 나의 길에만 집중할 수 있던 시간들이 좋았던 것 같아.
- 돌아보니 6년 전에 폴란드의 ‘모르스키에 오코’라는 호수를 보기 위해 3시간 정도를 등산했을 때도 좋았던 것 같아. 그때의 경험이 좋아서 그런지 계속 산을 오르게 되네? 왠지 모를 정복감도 함께고. 만약 한국에 있었다면 가을 내내 주말마다 친구와 등산을 갔을 것 같아. 실제로 정선의 민둥산에 가 볼 계획을 세우기도 했었고. 자연이 주는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아.
- 또 다른 곳을 뽑자면, 얼마 전에 다녀온 스페인의 미술관들과 평화로웠던 이탈리아의 토리노, 그리고 로스코의 그림들로 채워진 방이 있었던 치바현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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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은?
- 이건 정말 정해져 있지. 이번에 새로 읽었던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라는 소설이야. 이전에는 『희랍어 시간』이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했는데, 『바람』을 읽고 나서 최애 소설을 바꾸게 되었어. 꽤나 두께가 있는 작품이지만 거의 두 호흡만에, 밤을 새워서 읽었던 기억이 나. 추리와 연애, 과학적인 요소가 섞인, 어쩌면 소설계의 크리스토퍼 놀란과 히가시노 게이고가 섞인 정도의 재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연약하고 미약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들의 사랑을 엿보고, 그럼에도 꺼지지 않는 끈질긴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 인간으로서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과 트라우마, 그럼에도 펼쳐지는 생이 아름다운 작품이었어. 계속해서 몇 장면들을 곱씹게 돼. 내년에 한국에 돌아간다면 다시 읽고 싶어.
- 책을 읽으며 느꼈던 설산의 이미지와 혹독한 추위, 어떤 때에는 목조 건물에서 느껴지는 서늘함과 여름의 습기가 함께 전해지는, 그런 작품이었어. 음악에 대한 묘사도 있었는데 그걸 떠올리면 몸이 따가울 정도로 슬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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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새롭게 도전한 것은?
-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직도 가리는 음식이 많아. 내게 ‘푸아그라’의 이미지는 엄청 고급스럽고, 사치품이라고 여겨져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는데, 이번 크리스마스 때 프랑스 할머니할아버지 댁에 가서 ‘빵 데피스(pain d’épice)’에 푸아그라를 얹어서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어! 역시 사람은 새로운 걸 계속해서 경험해 봐야 하는 건가 봐.
- 아 그리고, 발레! 태어나서 춤을 정식으로 배워본 건 처음이었어. 학교 수업에서 배운 것을 제외하면? ‘춤’은 고대에 동물들의 움직임을 표현하거나 제의에서 쓰이던 몸짓이잖아. 음악이 곁들여지고. 춤을 추면서 공통된 외국어가 아님에도 감정을 전할 수 있다는 것에 감동을 느낀 것 같아. 내가 지향하는 ‘시’와 비슷하다고 느꼈어. 한국에 돌아가서도 계속해서 배우고 싶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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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세하게 적자면 끝이 없을 것 같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남겨볼까?
나는 어떤 말을 듣고 오랫동안 곱씹는 버릇이 있는데, 올해는 “남들말고 너나 좀 챙겨”라는 말을 들었지. 그게 나의 사랑인 걸. 그리고 이 사랑은 나를 갉아먹지도 않고, 너무나 편안한 중력상태에 나를 놓았는 걸.
내년에 나의 사랑과 이 사랑에 대한 책임이 깊어져가길 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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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하루를 보내려고 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야?
나는 마지막으로 프랑스 할아버지댁에 일본인 친구와 가서 저녁을 먹고,
시내에 나가서 신년행사를 구경할 것 같아.
한국은 지금 그런 분위기가 아니겠지?
이렇게 허망하게 목숨이 스러져.
악에 대항하는 방식으로서의 사랑이 아닌,
나를 지키기위해서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해야 할 것 같아.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고,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며 눈을 감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
오늘 일본인 친구에게 내 생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어.
공휴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꽤나 중요한 날이라고.
그리고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항상 내 생일이 중요한 날이라면서 전화를 주셨다고.
살아있는 동안에 우리는 계속해서 생일을 기념할 거야.
죽은 뒤에는 누군가 나의 명일을 기억하겠지.
우리가 타인을 기억하는 일이, 누군가를 향한 사랑임을,
그러니 내가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될수록, 더 많은 사랑이 자라는 일임을,
알아줬으면 했어!
새해 복 많이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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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 『바람이 분다, 가라』
생명이 꺼지면 영혼은 고통 없는 곳으로 간다는 말을 당신은 믿습니까. 그 믿음에 의지해 때로 사람들은 피 흘리는 동료, 신음하는 개를 앞당겨 죽입니다. 하지만 사실일까요. 전장에서, 동물병원에서 그들의 고통을 사라지게 할 때, 정말 사라지는 것은 그들을 지켜보던 우리의 고통 아닐까요.
(...)
너만 한 나이였어
이 년 가까이 스테로이드 제제로 치료를 받았지. 부작용으로 온몸이 백 킬로그램 가까이 부풀어 올랐지. 견디기 어려웠어. 그렇게 육중한 몸으로, 조그만 상처도 내지 않으려고 절절매면서, 어린 누나가 안간힘을 다해 벌어오는 돈으로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는 게.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을 꿨어. 꿈에 보니 난 이미 죽어 있더구나.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몰라. 햇볕을 받으면서 겅중겅중 개울가를 뛰어갔지. 시냇물을 들여다봤더니 바닥이 투명하게 보일만큼 맑은데, 돌들이 보였어. 눈동자처럼 말갛게 씻긴.
동그란 조약돌들이었어.
그중에서 파란 빛이 도는 돌을 주우려고 손을 뻗었지.
그때 갑자기 안 거야. 그걸 주우려면 살아야 한다는 걸. 다시 살아야 한다는 걸.
그게 무서워서, 꿈속에서 나는 조금 울었던 것 같아.
(...)
삼촌
수유리 집에서 새우던 밤들을 기억해.
캄캄한 거리를 헤매다 돌아온 새벽,
수도꼭지를 틀어 찬물을 마시고, 얼어붙은 얼굴을 씻고,
건너편 동네에 불빛들이 밝혀지는 걸 지켜봤어.
정희네 부엌에도 불이 켜졌을까, 생각하면서.
무한히 번진 먹 같은 어둠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삼촌은 말했지.
생명이란 가냘픈 틈으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지만,
언젠가 우리한테서 생명이 꺼지면 틈이 닫히고,
흔적 없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게 될 거라고.
그러니까, 생명이 우리한테 있었던 게 예외적인 일, 드문 기적이었던 거지.
그 기적에 나는 때로 칼집을 낸 거지. 그때마다 피가 고였지. 흘러 내렸지.
하지만 알 것 같아.
내가 어리석어서가 아니었다는 걸.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는 걸.
지금 내가, 그 얼음 덮인 산을 피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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