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밀린 답장을 써 Montpellier ➡️ Montpellier Sud de France
오늘 날짜 2024.11. 1 금
걸은 거리 13.1km
걸음 수 20876 걸음
오늘의 달 🌑
|
|
|
"나는 왜 나여야 할까?"
🫥'온전한 나'를 찾는 것, 그건 결국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기도 해. 사실 중요하잖아.
누군가는 굳이 '나'를 찾을 필요가 있냐는 말도 해. 그게 인생에서 큰 의미가 아닌 사람도 분명 있겠지. 그렇지만 나한테는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삶을 영위하게 하는 큰 의미더라고.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를 읽었을 때도 참 공감이 많이 됐었어.
돌고돌아 결국,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 하나님은 나를 왜 만드셨으며, 만일 우리가 우연한 세포의 조합으로 태어난 것이라면 그건 또 왜 그래야만 했던 걸까?
오래오래 꾸준히 고민해보았지만 여전히 모르겠어. 나는 왜 나여야 할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라야? |
|
|
‘나’의 존재가 이다지도 슬플 수가 없지.
아니, 실은 ‘너’라는 존재가, 너와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이 사실이, 내 눈 앞에 세상이 있다는 것이, 내 안에 있는 게 나의 세상이 아니라는게, 나의 세계 바깥이라는 게 아직도 존재한다는 게,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식별하지 못하고, 내게 펼쳐지지 않은 세계가 있다는 것은, 그곳으로 넘어가는 것은, 과거의 ‘나’가 죽는다는 걸 의미해.
마치 드니 빌뇌브의 영화 「듄」 속 주인공 폴이 죽음을 경험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계속해서 과거를 죽이고, 과거의 ’나‘의 모습에서 변화해 새로운 ’나‘로 이행하지. |
|
|
나야말로 묻고 싶어.
‘나’를 찾는 일은 왜 중요해? 어떻게 ‘나’를 찾음으로써 삶이 지속될 수 있었어?
나에게는 ‘나’가 누구인지보다, ‘나는 왜 사는가?’가 더 선행하는 질문이었어. 물론 삶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거야.
혹은 반대일수도 있을 거야. 왜 살아가는지를 찾다보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수도 있을 노릇이겠지. ‘삶의 이유’와 ‘자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 같아. |
|
|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버리게 되었어. 어떤 이유에선지, 정확하게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그 질문은 나를 비참하게 느끼도록 만들었어. 답이 나오질 않으니 매일 같이 답답했고, 이유가 명확하지 않아서 삶의 무게 역시 느낄 수가 없었어.
이게 비단 내 스스로의 삶의 무게만의 문제일까? 아니, 나는 이러한 가치판단이 타인에게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해.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타인의 삶 역시 가볍게 생각했어.
나의 목숨을 쉽게 여긴다면, 타인의 목숨을 귀하게 여길 수 없어. 반대로 자신을 끔찍하게 아낀다면, 타인에게도 그러한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씨앗을 지닌 거지.
이런 마음을 비어있다고 할 수 있을까? 왜냐면 증오도 없었거든. 경중이랄게 없는 공허였어. |
|
|
'왜 살아가는지'를 알 수 없으니 그 목숨이 귀한 것인지, 가치를 진정으로 느낄 수 없었어. 나 역시도 해답을 찾지 못한 한 사람에 불과했고.
모두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왜 살아가는지'는 말하지 않아.
과학자들은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밝혀내지만, 우리가 잠을 자는 이유는 밝힐 수 없어. 왜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 걸까?
왜 살아가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면 죽게 되는 걸까?
아니면, 죽는 것과 다름 없이 살아가게 되는 걸까? |
|
|
어차피 알 수 없으니 포기하거나 받아들이라는 말은 남길 수가 없었어.
나는 너무 슬퍼하는 지점들이 많이 있었고, 그게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너무나 슬펐지만, 동시에 홀가분해졌어. 다른 꿈을 꾸면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
내가 사로잡혀 있던 질문은 내게 환상이었고, 그게 깨진 이후 나는 실제를 살게 되었어. 하지만 그게 모두에게 똑같은 방식과 시퀀스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우리 모두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스스로 그러한 순간에 직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옆에서 무슨 말을 한들 자신의 삶에 적용시킬 수 없으니까. 계기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르지. |
|
|
사실 주어진 모든 것들에 의문을 갖는 건 참 용기 있고 대단한 일이야. 이 세상을 바꾼 선구자들이 그러했듯. 누군가는 과학적 원리를 밝혀내고, 누군가는 예술로 인간의 심연을 드러내잖아.
나는 점점 시와 멀어지고 있음을 느껴.
이게 너무나 슬프다가도 또 기뻐. 나는 무언가를 뱉어내듯 써놓지 않고는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잠을 자려고 누우면 머릿속에 수백 가지의 단어와 문장이 떠올랐고 그걸 적어내지 않으면 스스로를 타박했어.
아직도 번뜩 떠오르는 것들을 흘려보내기 아까워서 이따금 바로 핸드폰 메모장을 켜곤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냐. 이전과 같이 자책하지 않아.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어.
나에게 있어 내가 된다는 건, 지금의 나를 위해 살아가는 거야.
어때, 좀 대답이 되었을까?
너무 엉뚱해서 원하던 답은 아니었을 것 같네. 미안. 하지만 난 이 또한 우리의 언어 사이, 미끄러지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세계이자 사랑이라고 생각해. 이 답장은 우리만의 세계고 아이야.
덕분에 좋은 길을 걸었어. 고마워!
좋은 하루 보내! |
|
|
이번 순례길은 완전 실패로 돌아갔어!
오늘은 느즈막히 일어나 몽펠리에 시내라도 구경을 하려고 했는데, 아니 실내만 들어가면 머리가 너무 아픈 거 있지?
나는 그래서 아침부터 점심까지 내내 길거리에서 빵을 먹는 사람이 되었어.
하지만 그덕에 실내에서는 잘 안먹는 크로와상도 오랜만에 먹었고, 몽펠리에 대표음식인 '티엘'이라는 것도 먹어봤어!
또 이렇게 불편을 겪어보니까, 앞으로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 생각도 할 수 있었고...
이렇게 보니 마냥 실패만은 아니네?
자극이나 동기부여도 얼마정도 되었고!
는/은 무언가 하기 싫을 때 어떤 방식을 써? 나는 이렇게 잔뜩 걸어!
😎
+카미노트 11월 구독자를 모집하고 있어!
그래도 정이 있으니까, 순례길 레터까지는 보고 가!
✨카미노트에 남기기✨
⬇ |
|
|
La Reine des Neiges - Libérée, Délivrée
디즈니 영화 「겨울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가 'Let it go'잖아?
이건 그 노래의 프랑스어 버젼이야!
오늘 돌아오는 길에 기차에서 프랑스어를 늘린 방법에 대한 영상을 보았는데, 디즈니 노래를 엄청 들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거의 10년 만에 이 노래를 다시 들어봤는데, 갑자기 엘사에게 감정이 이입돼서 울컥하는 거 있지?
나 요새 감수성이 엄청 풍부해졌나봐! |
|
|
✨11월 카미노트 구독✨
받아보는 이름 바꾸기!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