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말 잘 보냈어? 오늘 날짜 2024.10.07 월
그르노블 날씨 오랜만에 23도까지 올라간대
오늘의 간식 차이티 라떼와 카라멜피칸을 얹은 치즈케익🍰
오늘의 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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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의 행운
안녕?
주말 잘 보냈어?
나는 파리에서 오랜 친구가 찾아와서 함께 주말을 보냈어.
친구가 행복해 할 모습을 그리며 한국을 떠나던 날에 부리나케 책방에 들러 친구가 읽고 싶다던 시집을 샀어.
20시간이 걸려 프랑스에 도착했지만 친구는 휴가 중이라 만날 수 없었고, 내가 그르노블에 익숙해진 후에야 친구는 3시간 30분 간의 기차를 타고 와서 나를 만날 수 있었지.
내가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르노블 미술관에 들러 산책하듯 작품들을 지나다니고, 프랑스 사람들이 사랑하는 그르노블 요리인 ‘타르티플렛(tartiflette)’을 먹고, 카페에서 또 수다를 떨고, 그르노블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요새 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몽블랑과 알프스도 보고 드디어 집에 들어와 시집을 건내줄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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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얼추 먹은 뒤 친구가 시집과 같은 제목의 시를 펼쳐서 읽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어.
“너도 시 읽으면서 울고 그래?”
친구가 물었고, 나의 대답은 ‘아니’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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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정리하고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는 발레를 시작했어.
내가 발레를 배우게 된 계기도 이 친구 덕분이야. 작년에 친구의 공연을 보았고,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나 발레를 하면서 행복한 모습을 보며 나도 덩달아 마음이 차올랐거든. 그래서 나도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지만 한번 해보고 싶었어.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은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신체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야.
발레는 고관절의 가동성과 유연함과 근력을 모두 요하는 신체적 예술이고, 그중 나는 근력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두 가지가 부족했거든. 심지어 노력으로 커버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의 한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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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발레는 정말 복잡했어.
지금까지 총 세 번의 수업을 받았는데, 나는 첫날부터 손동작과 팔의 높이를 지적받았어.
두 발을 놓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고, 스텝도 다양해. 이걸 따라가며 상체까지 신경을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어.
2주차가 지나고, 발레를 신청한 걸 약간 후회했어.
이럴거면 평소에 잘하던 수영이나 할 걸. 왜 분수에 맞지도 않는 발레를 하겠다고.
심지어 무용실에 있는 커다란 거울에 짧고 두꺼운 내 몸이 반사되어 보일 때면 기분이 썩 좋지도 않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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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 수요일, 가기 싫은 몸을 이끌고 겨우 발레 수업에 나왔어.
따라가기 벅찬, 아니 따라갈 수 없는 동작들을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이 지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점프’를 한다는 거야! 내가 이거 하나는 자신 있거든!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참 웃긴게, 내가 학생들 중에 점프를 잘한다는 게 아니야. 그냥 내가 유일하게 박자에 맞춰 잘 따라할 수 있는 동작이야. 그런데 나는 이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어. 점프 하나를 발레의 전부라고 할 순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바로 활력을 얻었어.
그래서 친구와 발레를 할 때 어려웠던 동작들을 물어보고 내가 점프는 그나마 잘 할 수 있다며 친구 앞에서 재롱을 조금 떨었더니, 친구가 칭찬을 엄청나게 해주는 거야! 그러면 또 신나서 더 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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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내가 즐겁게 점프를 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발레를 시작할 동기부여를 받았대.
친구 역시 발레가 어려울 때가 있었는데, 내가 겨우 점프 하나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서 발레를 해야겠다고 말했어.
그때 내 머릿속에서 친구가 방금 전에 한 말이 겹쳐졌어.
“너도 시 읽으면서 울고 그래? 감동을 받아? 아닌가, 너는 분석하면서 읽으니까 나처럼 이러지 않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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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시나 소설이나 영화나 음악으로는 감동을 받기 어려워졌어.
친구가 읽어주는 시를 듣고도 나는 단어들의 구성과 성격이 어떤지를 따져.
나의 경험과 그 시를 나란히 보지 않아. 인간의 보편적인 감상을 대입시켜.
하지만 친구는 아주 짧은 시를 읽으며 눈물을 흘려.
나는 고작 발레 점프를 하면서 너무나도 기뻐하고.
우리는 서로 각자의 분야에 미숙하기 때문에 그것들에서 욕심이 배제된 감정을 느껴.
그리고 이 감정들은 우리를 충만하게 해.
어지럽게만 느껴지는 미숙함이 우리를 더 깊은 삶으로 이끌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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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잖아.
항상 배우는 자세로 겸손하게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이미 그만큼의 실력이 있는데 어떻게 겸손해지겠냐고?
그러니 새로운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다시금 느끼는 것,
그것이 초심을 되찾는 일이 아닐까?
가끔 일주일이 7일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해.
노트를 쓰며 매주 마음을 다잡게 되거든, 나 역시도!💙
, 주말에 뭐 했어?
좋은 거 있으면 나도 해 보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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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
매일매일 햇살이 짧고 당신이 부족했던 적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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