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오늘 날짜 2025.2.20. 목
오늘의 날씨 별을 보면서 걸었어. 해가 뜨기 전부터 걷기 시작했거든.
그 뒤엔 흐린 날씨가 계속되었어.
오늘의 달 🌗
오늘 걸은 거리 28,9km
오늘 걸음 수 43,851걸음
Portomarín ➡️ Palas de Rei
남은 거리 67,7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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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27.갈색의 순례자
'빅 이벤트'가 있던 날이야.
여느 때와 같이 카미노트의 발송을 예약했어.
자정이 약간 되지 않았던 시간으로 기억해.
예상치 못한 두 번째의 모험으로 기진맥진 해진 나는 바로 잠에 들었어.
그러다가 새벽에 발치에서 미친듯한 간지러움이 느껴졌어.
핸드폰 플래쉬로 간지러운 부위를 확인했고, 줄지어 연속으로 물려 부어있는 자국을 발견했지.
한숨을 내쉬고서는 이불과 침대를 샅샅이 뒤져서 결국 '빈대' 한 마리를 발견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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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지럼을 타지 않아.
어릴 때는 곧잘 타곤 했는데, 그냥 참는 연습을 했더니 이젠 발바닥을 간지럽혀도 아무 느낌이 들지 않더라고?
이게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간지러움을 느끼지 않아서 피부를 긁지 않는다고 생각해보면, 그래서인지 나는 모기에 물려도 잘 긁지 않아서 부푼 부위가 금세 가라앉아.
대신 나는 모기와 빈대에 알러지가 있어. 그러니까 모기에 물리면 피부가 벌개지면서 부풀더라도 크게 간지럽지가 않고 그저 열감만 느껴지는 편이야.
하지만 빈대는 차원이 달라. 알레르기에도 피부를 긁지 않던 내가 피를 볼 정도로 긁고, 또 다시 손톱에 있던 독이 올라 단단하게 부어오를 정도로 심각해.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면 한달 가까이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항생제와 알러지약을 먹고,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기도 해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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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시 반에 깨어서는 한 시간 동안의 빈대수색과 색출을 마치고, 짐을 모조리 챙겨 소파가 있는 주방으로 나왔어.
나올 때 보니 이층침대의 내 밑 자리를 쓰고 있던 미국인 순례자가 팔과 다리를 긁고 있길래 '빈대에 물렸다'는 메세지만 남기고 자리를 떴지.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하던 중 갑자기 그 친구가 나왔어. 알고보니 나한테 '지금 어디냐'고 답장을 보냈더라고?
그러고선 그 친구도 화장실에 가서는 자신의 몸을 꼼꼼히 살폈는데, 팔 한 군데 빼고는 물린 자국이 보이지 않더래.
하지만 이 친구는 대학을 갓 졸업했고, 순례길도 처음인데다가, 빈대에 물려본 적도 없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대.
나는 빨래를 하고 고온으로 건조해야 한다고 말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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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자지 못해 피곤한 내 얼굴을 보던 이 친구는 갑자기.
"그럼 우리 그냥 지금부터 걷자! 29km니까 11시 즈음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고 말했어.
나는 진심이냐고 물었고.
"얼른 가서 우리 일찍 씻고, 빨래도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 올 때까지 쉬면 좋잖아!"
근데 사실 나는 거실에서 아침까지 잘 생각이었거든?
'어려서 기운도 좋네'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래, 그럼 가자."고 제안에 응했어.
잽싸게 준비를 하고, 각자 아침을 먹고 우리는 아주 깜깜한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어.
새벽 6시였지.
(방에서 뒷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열면 다른 사람들을 깨울까봐 빙 돌아서 담을 넘었어. 이 친구가 빨래를 안챙겼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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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기 전에 걷기 시작한 날들은 꽤 많아.
아니 사실 대부분의 날들을 박명에 의지해 걸었어.
하지만 이 겨울에, 해가 8시 30분은 되어야 떠오르는 이 계절에, 우리는 헤드랜턴을(나만) 끼고 차도 다니지 않는, 조명도 하나 없는 도로를 따라 걸었어.
오리무중은 약과였더라고. 그건 발밑이라도 보이긴 하거든.
한참을 걷고 있는데, 이 친구가 '왜 헤드랜턴을 쓰고 있냐'고 물었어.
당연히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쓰고 있는 거지?
그랬더니 자기는 앞이 잘 보인대.
어차피 도로니까 하얀 선만 보면 되는 거 아니냐면서.
그런데 나는 하얀 색도 보이지 않는 걸?
그러고서는 괜찮다면서 눈이 어둠에 적응을 할 거니까 랜턴을 꺼보라는 거야!
나는 속으로 정말 이 친구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잘못된 판단을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
친구의 말대로 잠깐 랜턴을 껐어.
하지만 내 눈은 너무나 까매서 보이지 않는다니까,
"내 눈도 어두운 갈색이야. 그런데 나는 잘 보이는데?"
얼마나 얄밉던지. 친구의 옷자락을 쥐고 더듬더듬 걷다가 결국 랜턴을 다시 켰어.
"아시아인들은 대부분 눈이 어두운 갈색이야. 나는 그 중에서도 꽤나 진한 편이라 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하지만 네 덕분에 별을 볼 수 있었어. 그건 정말 좋았어. 이 새벽에 같이 나가자고 해줘서 정말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나 혼자서 이렇게 걷는 건 상상도 못했을 거야. 다른 사람들이 일어날 때까지 잠들기는 커녕, 또 빈대가 있진 않을까 덜덜 떨면서 남은 새벽을 보냈을 거야.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이렇게나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어둠 속에서도 걸을 수 있었어. 누군가는 이걸 어둠으로 바라보지 않거나, 어둡더라도 볼 수 있다고 말해. 그건 굉장히 멋진 일인 것 같아. 나한테는 무섭기만 한 상황인데, 그렇지 않은 네 덕분에 나 역시도 이겨낼 수 있게 되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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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리는 오늘도 다름과 기적들을 마주해.
다르다는 기적과 우리가 서로 다른 기의를 가지고 있음에도, 같은 기표로 소통하고 있음에도 함께 경의를 느끼는 것이, 나에게는 놀라움의 연속으로 다가와.
내가 한국에 정착할 수 있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던 순간이거든.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공통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때, 때로는 답답함이 있지만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 그저 다름을 '이해'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돼.
그때 깨달았어.
같은 한국어여도, 한국인이라도 우리는 서로 완전히 다른 '기의'를 갖고 있다고.
내가 '코끼리'를 말할 때 우리 머릿속에는 저마다 다른 코끼리가 생각날 것이라고.
그러니 미국의 코끼리든, 프랑스의 코끼리든, 한국사람들의 코끼리든, 이것은 그저 차이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이 차이가 '나의 세계'를 더욱 다채롭게 넓혀 줄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다름을 이해하고 끌어안았으면 한다고, 그렇게 느낀 날을 되새겼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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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a!
이전에는 중반을 조금 지났을 즈음인 '레온'에서 빈대에 물렸어.
그날은 하필 39km를 걷고도 같이 걷던 누군가를 돕겠다며 사방팔방을 뛰어다니다가 택시를 타고 레온에 가서는 새벽에 빈대에 물렸었어.
그리고 그때 당시 발랐던 약이 잘 듣지 않아서 이번에는 처방약과 연고를 가져왔던 거야.
또 그렇게 준비했던 계기는, 첫 순례길에서 완주를 앞둔 시점에 3일 정도를 더 걷는 코스를 걷다가 그곳에서 빈대에 물렸는데, 나는 그게 빈대에 물린 건지도 모르고, 그 반응이 알러지인지도 모르고 그냥 팔이 두 배가 된 채로 벅벅 긁고 있던 걸, 다른 순례자들이 말해준 덕분이었어.
나는 어릴 적에 엄마가 어려운 일들을 미리 경험하는 게 인생에서 도움이 된다고 했던 말을 끔찍하게 싫어했어.
경험이 될 어려움들은 아예 겪지 않는 게 낫다고 믿었거든.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서도.
경험이 우리로 하여금 주의 깊게 만들고, 대비하게 하는 것도 사실인 것 같아.
때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머릿속에서 걱정하고, 지레 겁먹기도 하는데, 막상 겪어보면 별게 아니거나, 나중에 대처가 가능해지기도 하니까.
내 용기는,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겁 없음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들에서 기인한 것 같아.
¡Buen Camino!
✨카미노트에 남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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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t Baker - Everything Happens To Me(티모시 샬라메, 영화<레이니 데이 인 뉴욕>)
'안 좋은 일만 내게 전부 다 일어난다'라는 가사가 인상적인 곡이야.
왠지 내 처지 같아서 어둠 속에서 걷던 중에 그 친구에게 이 노래를 아냐고 물었는데, 전혀 모른다더라고?
하물며 '쳇 베이커'도 모른다는거야!
이것이 세대차이인건가...
그래도 이 노래가 옛날 노래라 여기에 나오는 게임이나 문화에 대한 설명은 해주더라고. 역시 미국인!
그리고 노래도 좋았다고 했어!
마침 오늘의 제목과도 어울리게 갈색 빛이 감도는 영상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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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카미노트 구독✨
그리고, 받아보는 이름 바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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