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적 있어? 오늘 날짜 2025.1.23. 목
오늘의 날씨 오랜만에 비를 맞았어.
다들 오늘 촘촘한 일정을 보내고 날씨마저 궂어서 오늘 밤이 편했으면 해.
그래도 한국보다는 안춥다는 말을 달고 사는 나의 동료들!
오늘의 사진 파리근대미술관에 있는 마티스의 '춤'이라는 대형화야.
디오니소스적인 움직임이 인상적이지!
오늘의 달 🌗
오늘 걸은 거리 14,2km
오늘 걸음 수 22,312걸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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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버리고 가고 싶어"
안녕!
난 드디어 내일, 아니 카미노트를 읽는 시간 기준 오늘!
밤 늦게 버스를 타고 바욘Bayonne이라는 곳에 도착한 다음, 그곳에서 식사를 한 후 기차를 타고 순례길의 시작지인 생장피에드포르St.Jean-Pied-de-Port에 도착할 거야.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는 방금 전까지 짐을 싸던 나와 친구의 이야기!
(친구의 동의를 구하고 글을 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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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한 번 물어봤던 질문인 것 같아.
“, 가지고 있는 물건이 많은 편이야?”
나는 옷을 좋아하는 사람에 비해서 옷도, 다독가들에 비해 책도 많은 편이 아니야.
좋아한다고 그걸 소비하는 편이 아닌, 아주 이상한 사람이지.
그래서인지 프랑스에 올 때, 여름, 가을, 겨울 옷을 준비하면서도 큰 어려움 없이 정말 자주 입는 옷들과 편한 옷들, 단정한 옷, 입고 버릴 옷들을 균형 있게 한 캐리어에 다 담아올 수 있었어.(그런 나도 욕심을 낸 게 있다면 라면 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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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는 시간이 흘러 친구가 짐을 쌀 때가 되었어.
나는 친구에게 ‘되도록 버리거나 편한 옷 위주로 가져오고 예쁜 옷이 필요하다면 여기서 사라’고 말했어.
친구는 ‘그래도 여행인데 예쁜 옷을 가져가면 안되냐’고 물었고, 나는 ‘나중에 알게 될 거니까 일단은 말리지 않겠다’고 재차 말했지.
그리고 오늘 순례길 짐을 싸면서 캐리어를 정리하는 친구가 “그냥 다 버리고 가고 싶어”라고 말하는 것을 끝내 들을 수 있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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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이 친구와 옷장정리를 하곤 했어.
주기적으로 함께 친구의 옷장을 비우는데도 꼭 친구는 족히 일년은 입지 않았던 옷들을 옆에다가 따로 빼놓고 처분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
하지만 가까운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다 알지.
그 옷을 앞으로도 입을 건지, 아닌지.
생활습관과 옷 입는 스타일과 성격을 잘 알고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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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단 옷을 사면 정말 목이 너무 늘어나거나 색이 바라거나 보풀이 일지 않는 이상 질려서 입지 않는 경우는 드문데 그런 내게도 선뜻 손이 잘 가지 않는 옷들이 있기는 했어. 물건들도 마찬가지고.
그런 경우에는 이사를 자주 했던 게 도움이 되었어.
나는 길게는 2년에 한번, 짧게는 1년에 한번 정도 사는 곳을 꽤 여러 번 옮겼거든.
특히나 22살 때 처음으로 갔던 순례길이 도움이 많이 되었었지.
그땐 아무것도 몰라서 버릴 줄도 몰랐고, 물건 하나를 가져가더라도 어떤 특징이 중요한지 알지도 못했어. 말그대로 무대뽀였던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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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순례길은 조금 달랐어.
공교롭게도 내가 순례길을 위해 출국했던 날짜는 마침 내가 2년을 넘게 살던 집을 정리하던 날이었어. 짐을 싸는 것과 동시에 뺄 것들 역시 생각해야 했고 그날은 본가에 짐을 부치고, 대학원 종강 강의를 듣고, 환전을 하고, 캐리어를 꾸리느라 정말 바빴던 기억이 나.
그러니 정말 필요한 것들을 쌀 수밖에 없었어.
그 당시에도 나는 순례길이 끝난 후 한달을 넘게 동유럽을 방황하게 되어거든.
순례길에서 사용할 것들 역시 사람들이 주로 준비하는 용품과는 다르게 그저 내게 편한 것들 위주로 꾸리게 되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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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번은 어떻냐고?
이건 다음에 다른 친구의 짐을 정리하는 날이 오면 얘기하도록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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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스포츠 용품점인 ‘데카트론’이 문닫기 30분 전에 도착해서 부랴부랴 방수바지와 스포츠타올, 헤드랜턴과 발가락 양말을 구매했어.
그리고 친구는 무려 한국에서 가져온 등산가방 벨트가 고장이 나 새로운 가방을 사야만 했어.
새로 사온 짐들에 원래 가져가려던 물건들을 함께 넣으며 친구가 후회를 거듭했지.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날 것 같았대. 저렇게 무겁고 많은 것들을 가져오면 뭐하냐고, 결국은 다 편한 것만 찾게 된다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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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없으면 정말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물건이 있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처럼 모두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들을 제외하고 말이야.
친구의 욕심이 옷이었다면(여행을, 그것도 유럽여행을 온다면 당연히 예쁜 옷을 입고 싶지만! 나도 처음 왔을 땐 그랬거든!) 나의 경우는 이 레터를 쓰기 위한 아이패드와 키보드야.
저번 순례길에서도 절반 쯤 왔을 때 짐이 너무 무거워서 결국 아이패드와 키보드를 우체국에서 산티아고로 보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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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번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다 놓고 가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오겠지.
이게 내가 선택한 길이어도.
그러니 스스로의 선택에 후회가 함께 온대도, 그것이 나의 과욕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너무 자책하거나 후회하지는 않기를 바라.
우리는 언제든 가장 적은 후회를 하는 선택을 하게 될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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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순례길을 같이 걷는 세 명의 순례자가 드디어 다 모였어!
근데 그거 알아?
오늘 짐을 싼 건 두 명이야.
한 친구는 한국에서부터 배낭을 만들어 와서 따로 카미노 동안 사용할 짐을 추릴 필요가 없어.
하지만 오늘 짐을 싼 우리는 알고 있지.
그 친구에게도 무언가 버릴 순간이 찾아오리란 것을...
그때 그 친구에게 남은 물건은 무엇이 될까?
그 얘기는 걸으면서 차차 하기로 해!
,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물건이 있어?
나는 오늘 같이 걷는 친구가 사줬던 화장품 하나를 버렸어.
친구는 비싸지도 않은 걸 아직도 쓰고 있냐고 했지만,
나는 무얼 받으면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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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빈 - 「아름다운 눈사람」(2025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선생님이 급하게 교무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신다 나는 두 손을 내민다 선생님이 장갑을 끼워주신다 목장갑 위에 비닐장갑을 끼우고 실핀으로 단단히 고정해주신다 나는 손을 쥐었다 편다 부스럭 소리가 난다 마음 편히 놀아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운동장 위로 얕게 쌓인 눈 새하얗고 둥글어야 해 아이들이 말한다 눈을 아무리 세게 쥐어도 뭉쳐지지 않고 흩어진다 작은 바람에 쉽게 날아간다 흙덩이 같은 눈덩이를 안고 있는 아이들 드러누워 눈을 감고 입을 벌리는 아이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다룬다 개를 쓰다듬듯 품에 안은 채 몇 번이고 어루만진다 눈덩이가 매끈하고 단단해진다 아주 새하얗고 둥근 모양의 완벽한 눈덩이를 갖는다
눈덩이가 내 품속에 있어서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그 세상이 아름다운 것도 같고 서툴지 않은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한데
하고 있던 목도리를 푼다 모자를 벗는다 장갑은 잘 벗겨지지 않는다 내 눈사람은 너무 잘 챙겨입어서 더 이상 눈사람 같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가고 없다 밟히고 파헤쳐져 더 이상 하얗지 않은 운동장을 본다
선생님 제 눈사람이 가장 새하얗고 둥글어요 그리고 또 커요 나는 말하고 선생님은 오랫동안 내 눈사람을 바라보신다 어찌할 수 없어서 울고 싶은 듯한 표정으로 선생님이 서 계신다 나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지만 같이 울상이 된다 이 순간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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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이 인상 깊었어.
"마침내 사랑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이 사랑에 끝까지 충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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