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죽는 것일까, 죽음이 사는 것일까? 오늘 날짜 2025.1.17. 금
오늘의 날씨 살짝 따뜻해진 것 같아.
최고기온이 12도까지 올랐거든!
하루종일 흐릴 것이라는 예보와 다르게 우리가 나왔던 오후에는 하늘이 맑았어.
오늘의 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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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적인 너무도 모순적인
오늘은 로마의 휴양지였던,
그리고 베수비오화산의 폭발로 폐허가 된 고대도시 폼페이 유적에 다녀왔어.
서기 79년의 8월 24일, 베수비오산은 분화했고 때마침 바람은 남쪽으로 불었대.
그 결과 미처 대피하지 못했던 인구의 10%와 도시 전체가 화산재와 화산쇄설류에 묻히게 되었어.
자칫 그날 바람이 북서쪽을 향했다면 2000년 뒤의 사람들이 유적이라 불렀을 곳은 바로 현재 이탈리아의 3대 미항으로 불리는 나폴리가 되었을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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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한동일 신부의 『라틴어 수업』에서 보았던 문구가 떠올랐어.
그에 따르면 로마의 묘지에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 문구가 새겨져 있었대.
Hodie migi, cras tibi
(호디에 미기, 크라스 티비)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오늘은 내가 시체가 되어서 이곳으로 들어왔지만, 내일은 이곳에 들어오는 당사자가 너 역시도 될 수 있음을 잊지말라는 뜻이었어.
유명한 라틴어 문장인 ‘Memento mori(메멘토 모리)’ 역시 같은 의미를 지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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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면서, 심지어 삶을 즐기라면서 죽음이 도처에 만연해있다는 것 역시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은 마치 모순처럼 들려.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면서 어떻게 삶이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까?
사실 답은 간단한 것 같아.
죽음 역시 삶의 일부라고 받아들이는 것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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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일상에서 정말 원치 않아도 마주치고 닥치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
그런 것들에 의해 우리가 더이상 슬픔을 느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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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즈음이었나 써놨던 일기가 있었어.
‘어린아이 때와 같이 단 것이 먹고 싶다.
이걸 통제하고 참아내는 것이 어른인걸까, 아니면 단 것을 더는 찾지 않게 되는 것이 어른인걸까?’
지금의 나라면, ‘단 걸 살 수 있는 재력과 이가 썩지 않도록 관리하는 능력과, 그럼에도 건강을 생각할 줄 아는 여유와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있는 경제력을 갖춘 사람‘을 어른이라고 말할 거야.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딱 저 두 가지 선택지만 주어진 것 같았어.
그리고 어른이란 게, 결국 둘 중에 한 가지 모습만을 가진 사람으로 여겨졌던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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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순은 당연한 것이었어.
한 사람은 어떤 때에는 어린아이처럼 단 것을 먹고 싶다가도, 어린아이가 아니기에 참기도 하면서, 그럼에도 이따금 주체할 수 없는 유혹에 의해 건강에 해가 될 것을 알면서도(정신건강에는 좋은!) 단 것을 찾게 되니까.
그러니 우리는 단 것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씩 우리의 만족을 위해, 그 경각심을 가지면서도 스스로에게 단 음식을 허락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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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모순이야.
무언가에 대한 경각심을 내려놓지는 않으면서, 그럼에도 그것을 마주할 때에는 경각심이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기.
모순을 경계하면서도, 막상 그것이 다가왔을 때에는 모든 것을 내어주기.
하지만 모순에 잡아먹히지 않기.
왜냐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삶이 있다면 죽음도 있는 것이고, 죽음이 있다면 또 다른 삶 또한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러니 모순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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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우리는 항상 죽음을 생각해야 해.
대신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돼.
그리고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순이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모순을 일으키려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것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일어날 때 모순이라고 부를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를 나는 죽음이라고 보지 않아.
그것은 명백한 살인이라고, 나는 믿고 있어.
죽음을 받아들이자는 말이, 자기 자신을 죽이라는 말과 같지 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야.
비록 우리가 타인의 죽음에는 발 밑이 무너지는 경험을 할지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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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모순으로 가득하지.
대의를 위하여 소수의 희생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모두의 목숨이 중요하지만 정작 자신의 목숨은 얼마든지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있어. 때로는 자신만의 이익이 먼저고, 다른 사람에 대한 약탈을 일삼는 사람 또한 있고.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다가도 어느 정도 선에서 벗어나면 그들에 대한 동정을 거두기도 하지. 나 역시도 정직하고자 하지만 일상에서 거짓말을 할 때가 기억하지 못할 만큼 많고.
그럼에도 내 세상에서 가장 큰 모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인 것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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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 세상에서 가장 큰 모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인 것 같아.
이렇게 될 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을 것처럼 믿고 사랑하기.
하지만 정작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에 상처를 받지 않기. 배신을 느끼지 않기.
모든 사람에게 모순이 있다는 것을 주지하기.
그럼에도 계속해서, 다시 사랑하며 살아가기. 믿기. 사랑할 수 있기를 믿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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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순에서 아름다움을 느껴.
극단적인 다름은 호기심과 탐구심을 유발하지.
그리고 그것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기에, 한 순간에 한 면만을 관찰자에게 인식시키기에 우리는 기억에 의존하여 모순을 비교하고 알아차릴 수 있어.
나는 꽤나 모순적인 사람이래.
특정한 기준이 있어서 어떠한 행동이 가능할 때와 안될 때가 명확하대.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궤변처럼 느껴지기도 한대.
하지만 나는 나의 그러한 점이 마음에 들어.
한 내 지인은 자신이 남들 앞에 설 때마다 서로 다른 자아로 그들을 대하는 것이 괴롭게 느껴진다고 한 적이 있어. 하지만 나는 이게 마치 글쓰기와 같다고 생각했거든. 우리가 어른과 이야기를 나눌 때, 시험을 볼 때, 면접을 볼 때, 발표를 할 때, 친구 혹은 가족과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의 말투는 정말 제각각이야.
그런데 이것을 자신이 파편화되었고 스스로를 모순적인 사람으로 본다면, 너무나 괴로울 것 같아.
그저, 나의 모순을 받아들일래. 사람은 언제나 한결같지 못하니까. 이 말 또한 바뀌겠지.
‘모든 것이 바뀐다. 이 말만을 제외하고‘라는 말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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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관 - 아름다운 것(한예리 cover)
'아름답다'는 것은 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
유일한 것, 혹은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에 아름다움을 느끼지.
그러니 우리의 일생은 단 한 번밖에 없기에 아름답고, 우리의 죽음 또한 마찬가지일 거야.
이 삶은 모순으로 가득차 있고, 아름다워.
오늘의 제목은 니체에서 따왔어.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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