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윤 - 「생물성」, 『투명도 혼합 공간』
인간은 사물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만으로 애정을 느낀대
비행기에서 본 도시는 강과 바다가, 광장과 공원이 서로를 지나치게 닮아 있었어
늙거나 젊은 사람 여자이거나 남자인 사람 개와 고양이가 모두 같은 점으로 요약되고
볼 때마다 신기해, 여기서 보면 모든 게 가짜 같아
비행기 창문으로 본 풍경을 실감하는 건 너무 비인간적인 일이 아닐까
너는 창문에 이마를 꼭 붙인 채로 말하지
집에서 기다리는 친구가 있어 그 애는 유난히 눈이 예뻐
그 애의 구슬처럼 투명한 눈동자를 사랑해
현관문을 열면 반가운 눈치를 보내는 그 애는 다른 어떤 개나 고양이와도
아니면 새나 도마뱀과도 도무지 닮은 데가 없고
마주 본 두 눈은 살아서 슬퍼하고 살아서 기뻐하고 아침이면 눈곱을 떼어줘야 할 것 같았는데
어제는 조류관에서 아주 많은 새를 봤어
조그맣고 단단한 부리 위의 두 눈은 유리구술 같았지
새의 마음 대신 내 얼굴만 비치는 투명한 표면이 무서웠어
“우리는 물리적 공간에서 자율적으로 보이는 움직이는 것들에게 의도와 삶을 투영하게끔 생물학적으로 타고 났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가진 로봇 청소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사랑하는 것들은 유독 살아 있는 것 같고
우리는 살아 있는 것 중 무언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네
둘 중 무엇이 먼저 벌어지는 일일까
어느날 아빠는 돌 하나를 데리고 집에 오셨어
매일 해가 좋은 오후에 물을 흠뻑 먹여야 한다고 돌은 물과 햇빛을 매우 좋아한다고
기쁨으로 반들거리는 돌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느냐고
냄새로 친구와 적을 구분하고 냄새로 사랑할지 말지를 결정하고 오직 네 가지 색만을 구분할 수 있는 얼굴에도
유일하게 두 개인 건 왜 눈이겠니
말랑한 촉감과 물컹해지는 마음 사이에서
물러터져가는 시간에
아무리 봐도 움직이지 않는 돌 위로
오후의 햇빛이 돌의 능선을 돌아 걸으며 빛나고 있다 |